아프리카TV에는 얼굴없는 유랑인들이 인터넷방송에 예고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심지어 닉네임을 바꾸거나 여러 개의 닉네임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여러 방송이나 다른 인터넷 게시판에 동시에 등장하면서 여러 개로 자신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수백, 수만 명의 시청자[1] 가 붐비는 인터넷방송에서는 개별 시청자 채팅의 개성을 인지하기란 어렵다. 빠른 채팅 속도로 인해 그들의 존재는 마치 소음처럼 휘발해버린다. 개인을 식별하기 불가능한 (혹은 식별이 그다지 의미없을 수 있는) 이 온라인 필드에서 나는 (예컨대 어떤 규모나 인원 등) 내 연구 필드의 수치화된 범위를 정하지 않고 내버려둔 채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위 글은 내가 아프리카TV 현지조사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마주했던 좌절에 대한 단상이다. 나는 인터넷방송의 문화에 관한 석사논문 연구로 2016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민족지적 현지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에스노그라피에 대한 공간적 접근법을 탐구하게 되었고, 이 글에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프리카TV(AfreecaTV) 2006년 한국에서 시작된 실시간 인터넷방송 플랫폼이다. 그 이름은 “Anybody Freely Broadcast TV”의 글자를 따온 것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신화적 고정관념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수익과 인기 면에서 아프리카TV의 선구적인 성장은 국내를 넘어서 글로벌한 인터넷방송 문화와 라이브스트리밍 플랫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스트리머[2] 가 한 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먹방”이라는 인터넷방송 장르의 세계화는 2010년대 초 아프리카TV 비제이의 방송에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TV의 주요 수익모델은 시청자가 BJ에게 사이버화폐인 “별풍선”을 주는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 후원 수익모델은 그 안정성이 입증되면서 트위치, 유튜브 라이브 등 국내외 여러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채택하고 있다.
아프리카TV의 성장 이면에는 혐오발언, 사이버불링, 성희롱, 성폭력 등 폭력적이고 부도덕한 활동이 만연해있다. 비제이들은 생계수단인 별풍선 기부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자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별풍선 기부 시스템은 또한 별풍선을 많이 쏜 시청자의 파산, 자살, 범죄 등의 사건들로 언론매체에 의해 사회적 병폐로 주목받기도 했다. 결국 2017년 10월, 당시 아프리카TV 서수길 대표가 뉴미디어 자율규제 관련 국정감사에 소환되기도 했다. 이후 아프리카TV를 비롯한 뉴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규제가 강화하는 추세이다.
그 무렵 나는 시청자이자 연구자로서 인터넷방송에 몰두했다. 처음에 나는 왜 사람들이 인터넷방송에서 벌어지는 문제적 활동에 열광하는가 궁금했다. 인터넷방송에 입문하자마자 나는 인터넷 플랫폼이 증폭시킨 익명성, 유동성, 즉흥성 등 인터넷방송의 예측하기 어려운 속성에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어포던스는 아프리카TV 플랫폼에만 국한되는 특징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어포던스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맥락과 미디어플랫폼에 따라 달라진다. 일라나 거숀 이 “미디어 이데올로기”라고 개념화한 것처럼, 사람들은 채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뿐만 아니라 “특정 채널의 소통적 가능성과 물질적 한계 모두”를 둘러싼 미묘한 이해와 실천을 발전시켜 간다 (Gershon 2010: 283).
그러면 왜 하필 아프리카TV인가? 내 연구는 아프리카TV 인터넷방송에 나타나는 “흐름”의 정치적 역동과 문화적 원리를 살펴보고자 했다. “흐름”이란 인터넷방송의 지금-여기 순간에 작용하는 어떠한 사회적 힘을 포착하는 현지의 용어이다.
인터넷방송에 대한 공간적 접근은 신원 및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모호한 아프리카TV의 개별 참여자보다 인터넷방송의 관계성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시청자의 가명(닉네임)은 고정된 식별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러 개의 이름을 동시에 갖거나 언제든지 원할 때[3] 닉네임을 바꿀 수 있었다. 닉네임에 본명이나 신원을 반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회원가입 때 제공한 인구통계적 정보에서 추출한 성별 표식(오직 남성과 여성)이 각 닉네임 옆에 표시된다. 그러나 많은 참여자들이 “부캐”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개의 사칭 계정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성별 표식은 그 진위가 쉽게 의심받거나 무시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BJ 방송에 여성 시청자가 많다고 말하면 곧바로 강한 의구심이 뒤따르곤 한다. 마찬가지로 100명의 시청자가 생방송에 참여하고 있다고 숫자가 표시되어 있더라도, 이 수치는 실제 화면 뒤에 있는 사람의 수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BJ와 시청자 모두 자신의 인터넷방송 참여 활동과 자기자신을 의식적으로 거리두곤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흔히 “사이버공간”과 “현실생활”을 대비하면서 이들 사이에 나타난 공통된 정서는 “나는 온라인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현실에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TV 참여자들은 인터넷방송을 둘러싼 규제와 비판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루저”로 칭하거나 자신의 열성적인 인터넷방송 참여를 “현실”의 관계에서는 숨기곤 했다. 이러한 자기 거리두기 태도에 대해 질문하자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터넷방송이 너무 빠르고 즉흥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순간의 “흐름”에 따라간다고 말했다.
그들이 “흐름”이라고 일컫는 것은 뒤르켐 전통의 “집합 열광 (collective effervescence)”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윌리엄 마짜렐라는 면대면 의례 상황에서 유래한 이 개념을 대중매개 네트워크로 확장했다. 인터넷방송의 흐름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무력하게 하는 능가하는 보편적 힘” (Mazzarella 2017: 109)을 만나는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는 아프리카TV 참여자들의 가시화된 이동과 다양한 인터네방송 안팎의 게시판 흔적을 통해 명시적이거나 추론적으로 흐름을 탐색했다. 다음에서는 디지털 에스노그라피의 세 가지 상호 구별되면서 교차하는 공간적 경계를 셜명하겠다.
아프리카TV “방”의 공간적 경계
먼저, 아프리카TV에서 설계된 경계와 사이트 구조가 사회적 상호작용 및 의미화와 어떻게 교차하는지 살펴보았다. 이러한 접근은 “인간의 경험과 의식이 물질적이고 공간적인 형태를 취한다”는 체현된 공간과 장소에 관한 인류학적 이해를 반영한다 (Low 2009: 28).
아프리카TV의 “방”은 화면에 표시된 경계지어진 인터넷방송 공간이다. 그림2의 왼쪽 이미지와 같이, 방은 비제이의 화면과 실시간 채팅창으로 구성된다. (왼쪽 이미지의 2) 영상 화면과 마이크를 독점한 한 명의 스트리머 (현지어로는 “브로드캐스팅 자키” 또는 “비제이”)와 실시간 채팅에 참여하는 다수 시청자 (1 는 BJ가 화면공유한 시청자 채팅창의 모습; 3은 시청자가 댓글을 보고 입력할 수 있는 아프리카TV 앱 채팅창의 모습) 간 비대칭적인 소통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시청자는 실시간채팅 외에도 “별풍선”이라는 사이버화폐를 BJ에게 “후원”하거나 “선물”함으로써 생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별풍선을 선물하면 후원자의 닉네임과 후원 직후 첫 채팅이 화면에 그래픽 이미지와 함께 표시된다. 따라서 별풍선 후원은 시청자가 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눈에 띄는 방법이다. 비대칭적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별풍선 선물은 인터넷방송 내 권력 작용과 교차한다. 나는 참여자 간 끊임없는 관심 쟁탈 경쟁으로 인해 어느 한 사람이 관심을 독점하는 것이 저지되고, 평등주의적인 사회적 힘을 발생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S. Kim 2020).
아프리카TV 참여자들은 여러 개의 방과 관련 웹사이트(예컨대, 디시인사이드)를 이동하며 공간을 만들어간다. 도시공간에서의 “담론적 걷기” (Wunderlich 2008: 132)처럼, 시청자의 유동은 목적이 없을 수도 있는 “참여적 걷기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성은 서로 다른 BJ 간의 관계를 개시하거나 강화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TV 시청자의 이동은 팬덤 정치로까지 이어지는데, 이 때 사람들은 개별 시청자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알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부자(‘우리’)와 외부자(‘그들’)을 구분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여러 웹사이트를 넘나들기: 아프리카TV와 디시인사이드
웹사이트나 플랫폼마다 시공간을 만드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나는 현지조사를 위해 아프리카TV 외에도 디시인사인드의 인터넷방송갤러리 (이하 ‘디시인방갤’)을 살펴보았다. 디시인사이드는 보수성향, 혐오발언과 여성혐오가 만연하다고 알려진 익명게시판이다 (김수아 2015; 김학준 2022; 김재훈 외 2023). 이길호(2012)의 디시인사이드에 관한 촘촘한 민족지에서도 드러나듯, 아프리카TV는 초기부터 디시인사이드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디시인방갤에서 사람들은 비제이와 사건에 대한 가십, 루머, 평가를 퍼뜨리고 이는 인터넷방송 내 역동과 함께 공명하고 진화한다. 디시인사이드를 연구현장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아프리카TV를 보다 광범위한 한국의 “디지털미디어 버내큘러 문화”(Coleman 2010)와 함께 맥락화하고 역사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게시판과 인터넷방송의 서로 다른 속성으로 인해, 디시인방갤은 인터넷방송의, 그리고 인터넷방송에 관한 기억을 만드는 장소이다. 여기서 “찰나가 지속하도록 만들어진다” (Chun 2008: 171).
더 나아간 탐색들
물리적, 은유적이거나 체현된 또다른 공간 경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과 관련이 있으며, ‘사이버’와 ‘현실’의 대비와 혼용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톰 벨스토프는 장소로서 가상 세계가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그 자체로서’는 가상 세계 맥락 너머의 영향도 포함한다”고 제시한다 (Boellstorff 2016: 395). 벨스토프는 가상 세계가 단지 잠재적인 현실이 아니라 “추가적인 현실들”이라고 주장한다. 버추얼과 리얼의 경계는 고정된 것도 아니고 항상 상호배타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다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리사 메세리가 “가상현실”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비현실(the unreal)은 현실(the real)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하지 않은 현실과 얽힐 수 있는 기회를 표시한다” (Messeri 2021: 343-344).
앞서 아프리카TV 참여자들이 그들의 인터넷방송 활동에 거리를 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터넷방송 방과 관련 웹사이트에 대한 공간적 접을 통해 인터넷방송을 그 자체로서 분석할 때, 나는 왜 아프리카TV 사람들이 “온라인 활동”과 “오프라인 현실” 사이에 일정한 괴리를 강조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언제, 그리고 왜 그러한 구분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는가? 이러한 차이를 도입하는 근간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지속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탐구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관해 무엇을 말해줄 것인가? 예를 들어, 이어지는 논의는 인터넷방송 안팎에서 도전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동성사회와 젠더 권력에 관한 탐구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각주
[1] 인터넷방송에서 “시청자”는 단순히 방송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실시간 채팅과 비제이 후원을 통해 적극적으로 생방송에 참여한다.
[2]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인들은 “브로드캐스팅 자키”의 줄임말로 “비제이”라고 불린다. 비록 이 (영문)포스트에서 나는 “스트리머”와 “비제이”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이 두 용어는 인터넷방송인이 주로 활동하는 플랫폼에 따라 차별화되어 사용된다는 점을 밝힌다.
[3] 2017년 6월부터 아프리카TV 회사는 닉네임 변경 횟수를 무제한에서 24시간 내 1회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나의 남은 현지조사동안, 이 정책으로 인한 유의미한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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